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이 사건이 알려지자 당연히 오스트리아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.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범죄가 잊을 만하면 벌어졌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성욕에 눈이 멀어 사람이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'''계획적으로 친딸을 [[성노예]]화하고 24년간 사육'''한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. 당연히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요제프는 다음과 같은 혐의가 인정되어 [[무기징역]]을 선고받아[* [[사형]]이 없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법정최고형이다.] 정신과 [[치료감호소]]로 보내져 계속 복역 중이다. * [[아동 성범죄]] * [[학대]] * [[과실치사]] - 요제프는 태어난 직후 죽은 아이에 대해 관리 소홀로 죽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반박할 확실한 증거가 없어 과실치사만 적용되었다. 엘리자베트의 증언도 이 부분에서는 차이가 없었다. 요제프의 [[변호사]]는 변호로 '''그래도 [[크리스마스]]엔 [[크리스마스트리|트리]]를 함께 만들었다'''는 [[개소리|궤변을 내세우면서 요제프가 감옥에 가선 안 된다고 그를 변호]]하였다가 '''[[암살]] 위협'''을 느끼고 [[빤스런|변호를 철회하기도 했다.]] 안 그래도 당시 [[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]] 등 [[납치]], 감금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'감금의 나라'로 찍힌 상황에서 경악할 만한 사건이 또 드러나면서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국가 이미지가 망가졌다고 한탄했다. 당시 가장 유명한 오스트리아인으로 [[아돌프 히틀러]]와 함께 요제프 프리츨이 선정되기도 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001&oid=213&aid=0000131809|2011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오스트리아에서 또 일어나기도 했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